Ch5.Net

메인메뉴


Vol.1
 1.

 2. 가을비 ... 듣기

 3. 가로등

 4. 회상 ... 듣기

 5. 이별 ... 듣기

 6. 바람 ... 듣기

 7. 즉흥#1

 8. 즉흥#2

 9. 상심

10. 종이비행기 ... 듣기

11. 바다 ... 듣기

 

데모 시디 제작 후 변명
    내가 데모시디란 것을 만들고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변명아닌 변명을
    해도 좋을 때가 된 것 같아 구구한 부연을 늘어 놓을가 한다.
    그런 이상한(?) 연주를 비록 데모긴 해도 시디로까지 만들었는지 별 미친놈
    다봤다 할 지도 모를 것이다. 내가 들어봐도 테크닉으로는 대실패작이고
    음악적으로도 문제가 졸라 많은 것이다. 솔직히 그렇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약점이자 반대로 장점이기도 한 것은 무수한 실패작을
    경험하고 나서야 한두개의 괜찬은 놈이 건져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시행착오를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쓰레기(?)들이 생산되어도
    적당한 수준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준다.
    
    하여간에 나는 아마추어이고 사실 연주 실력을 나로부터는 강요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첫째로 내가 연습하는 것에 게으르고, 둘째로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재능도 사실 없고,
    셋째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 테크닉이 별로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또한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프로가 아니므로 완벽한 성과물을 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하나의 음악적 아이디어만 있으면 다른 것이 크게 부족해도
    밀고 나갈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데모씨디 두번째 곡으로 내가 '가을비'라는
    제목을 나중에 붙인 그 곡이다. 어떤 음악적 아이디어인지는 설명이 길어지겠으나
    연주상으로 불때에 특히 리듬에 있어서는 말도 안되게 실수가 많다.
    다시 말해 빨라졌다 느려졌다 들쭉 날쭉이다. 나야 어떤 목적이 있어 만든 것이니
    그것을 염두에 두고 듣지만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이 불편하고 불안한 리듬이
    가장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나는 뭐든지 반복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도 그러한데,
    클래식을 좋아는 하지만 한곡을 능숙하게 연주하기 위하여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이 있다. 물론 재능이 있고 초견이 훌륭해서 몇번만 뚱땅(?)거리면
    금방 능숙하게 뽑아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물론 단순 반복이야말로 경지에 오르는 중요한 수련 과정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에는 내 몸이 수련을 통해 익숙해 지기 전에 간사한 귀가 이미
    그 음악에 질려 버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용납되지 않는건 내가 예를 들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몇번을 허벌나게
    연습해서 잘 치게 되었다고 하자. 아마 한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후일 것이다.
    두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1년에 겨우 많아야 12개의 레파토리만을
    갖는 것이다. 이건 아주 양호한 편이고 보통 4-5개의 레파토리를 갖게되면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토록 어렵게 습득한 것도 한두달
    연습을 쉬어 버리면 또 까먹어 버린다. 시발, 졸라 더럽고 욕나오는 일 아닌가.
    
    나의 데모 시디의 연주들이 한편으로 기승전결이 많이 부족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내가 연주를 하던 그 당시의 즉흥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물론 가급적
    일종의 회귀주의라 할 수 있는 소나타 형식같은 그런 것을 염두에는 두지만
    특별히 신경쓰지는 않는다. 하나의 멜로디에서 또 다른 멜로디로 접속될 수 있고
    다시 본래의 멜로디로 회귀해야 하는 의무감이 전혀 없거나, 또는 아직까지
    너무나 부족한 음악적 감각의 결여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느다.
    
    그러니까 데모시디의 연주는 단 한번의 리허설도 없이 바로 바로 녹음된 것이고
    그 중에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연주를 빼고 그나마 좀 봐줄만 한 것만 모았는데도
    역시 졸라 쪽팔린 면이 있다는 것은 좋게 말하자면 발전가능성이 많다는 식으로
    좋게 좋게 넘어가는 중이다.
    
    더불어서 그런 클래식이 듣기에는 좋아하나 내가 발견하였고 모방하고 싶어하고
    본받아 따라가고자 하는 음악적 노선과는 전혀 다르다. 즉흥성과 더불어 내가
    중점적으로 치중하고 있는 것은 음 자체의 변화이다. 이 말은 이미 여러 글에서
    많이 언급하였던 것이다. 다시 부연하자면 서양 음악이 음을 벽돌로 보고 그 벽돌을
    하나 둘식 쌓아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거라면 음표는 단지 재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음 자체가 물크러지고 유기적이어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변화하여
    그런 유동적인 음과 음들의 관계라는 면에서 바로 동양의 음악이 나온 것이다.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템포 루바토와 피치가 될 것이고, 동양식으로라면 장단과
    농현이다. 나아가 이는 단순 음악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몸으로 먼저 체득이
    되고 나면 그것이 음악적으로 표현되어야 옳다. 테크닉이 굳이 많이는 필요없다는
    것이 이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테크닉의 부족을 자랑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또라이와
    다름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빠른 템포를 정확하게 연주한다거나 앞뒤가 일관성 있는 그런 연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거라면 위대한 호로비츠를 듣지 뭐하러 나까지 
    그런 짓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하여간 앞으로 많은 난관과 부족을 메우기 위해 테크닉이 아닌 다른 식의 수련을
    계속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