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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은 다양하다 작성일 2018-03-04




내가 어렸을 때 격투기 시합 구경은 권투와 프로레슬링이 최고 인기였다.
지금은 종합격투기가 대세로 자리를 굳힌 듯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란 주장이 있듯
UFC 같은 (잔인한) 시합을 보며 즐기는 것 자체는
대다수 인간이 갖고 있는 사디즘을 대리 만족을 통해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무술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고
관심이 없으니 편견도 심한 편인 것 같다.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무술이 이런 격투기 시합뿐이다 보니
대다수가 '무술 = 격투기'라고 단정해버리는 경향이 짙다.
한때 무술 덕후였던 1인으로서 이런 편협한 시각은 심히 유감이다.
무술 분야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넓은 영역에 걸쳐 있으며 또한 당연히 다른 운동 분야와 몸 쓰는 원리를 공유한다.
그래서 내가 이 바닥에 나름 오래 머물면서 경험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1) 무기술

'武(무)'는 본래 창(=戈)을 어깨에 들쳐메고 걷는(=足)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였는데
전국 시대에 이르러 공격(=戈)을 그치게(=止) 하는 기술로 의미가 와전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즉 본래 무술은 무기술이었다.
현재는 전통적 무기술인 도, 검, 곤, 창, 활 등을 '냉병기'라 부르고
총기류를 다루는 무기술을 '화기'라고 한다.
무기술은 기본적으로 살인술이라 일본 검도처럼 스포츠화를 거치지 않는 한 실전 자체가 존재하기가 어렵다.

(2) 마상무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은 보병과 기마병이다.
보병의 무술과 기마병의 무술은 공통점 못지 않게 차이점이 많다.
기법 뿐 아니라 사용한는 무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마상무예에 사용하는 말은 (정유라 때문에 더 유명해진) 마장마술용과 다른 몽고 계통의 작은 말이다.

(3) 격투기

전통적으로 맨손 무술은 본격적으로 무기술을 배우기 전에 익히는
이른바 '초학입례지문(初學入藝之門)'에 속하는 것이었다.
맨손 무술은 크게 태권도, 무에타이, 가라데 등의 타격계와
유도, 브라질 유술, 아이기도 등의 유술계로 나눌 수 있다.
유술은 전쟁터에서 갑주를 입은 상대를 때려 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에
관절을 꺾거나 조르는 기술이 세련되게 발전한 형태이다.
화약 무기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냉병기와 마상무예가 전쟁터에서 효용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며
퇴보한 반면 타격계 무술은 흥행 요소(싸움 구경, 도박 등...)를 더해 발달하였다.

(4) 쿵푸

과거엔 중국무술영화를 별 생각 없이 '쿵푸 영화'라 불렀다.
오늘날엔 '쿵푸'의 한국어 발음이 '공부'였다는 것 정도는 많이 알려진 듯하다.
쿵푸는 격투기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형태이자 필연적 귀결이기도 하다.
격투기는 사실상 2-30대의 전유물이 때문에 나이가 들면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이를 먹었어도 수련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한 경우
무술은 승패를 초월하여 바르게 몸 쓰는 원리를 깊이 연구하는 분야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이가 격투기와 쿵푸를 헷갈린다.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킨 책임은 무술인들에게도 상당 부분 있다.
이따금 태극권 수련자가 매스컴에 나와 "태극권 = 천하무적"이란 말을 공공연하게 떠벌린다.
명백한 허풍이다.
이처럼 쿵푸를 격투기로 오해하니 "태극권은 배워 봤자 무용지물"이란 황당한 주장이 먹힌다.
비유하자면 망치는 두드리는 물건이고 톱은 써는 물건이건만
못을 망치 아닌 톱으로 두드리면서 잘 안 들어가니 무용지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격투기에 뜻이 있다면 당연히 가라데, 무에타이, 유도등을 익혀야 마땅하다.
그러다 어느 단계에 이르러 성장의 한계를 느꼈을 때 쿵푸를 익히면 이로 인해 중요한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쿵푸는 접착제와 같다.
그 자체는 형태가 없지만 이 분야와 저 분야를 잇는 역할을 한다.
나는 무술과 더불어 춤을 공부하며 이 경험을 뼈져리게 하였다.

(5) 무술사

무술에서 또 하나 중요한 분야로 무술사 연구가 있다.
가장 중요한 테마는 전쟁사이긴 하지만 사실 '전쟁사 = 인류 전체 역사'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문화, 경제, 사회 등 안 건드리는 분야가 없을만큼 방대하기 때문에
범위를 축소하여 전투사만을 다룬다고 해도 시대별 무기, 복식, 군편제, 진법, 병법서 등등...
역사 덕후가 덕질할 거리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그동안 나 같은 민간인은 1차 사료에 접근할 권한이 없고 한문 자료 일색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지만
십년쯤 전에 백과사전 수준의 '무예사료총서'가 여러권 나와 아마 이거 열심히 보는 변태(?)들이 어딘가 있을 듯.

(6) 복원

무술 복원은 무술사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것은 크게 동작 복원과 복식 복원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무술 복원이라고 하면 동작 복원을 가리킨다.
글, 그림 등의 사료만 남아 있을 뿐 전수맥이 끊긴 무술을 현대에 복원하는 작업이다.
복원은 또 하나의 창작이다 보니 복원자가 어떤 무술을 전공하였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동일한 사료를 보고 태껸 전공자가 복원하면 태껸 냄새가 나고
태권도 전공자가 복원하면 태권도 냄새가 난다.
일례로 '본국검법'의 경우 대한검도회에서 복원한 것은 어딘가 모르게 일본 검도스럽고,
중국 무술 단체에서 복원한 것은 본래 쌍수검법(=양 손)인 것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편수검법(=한 손)으로 바꿨다.

또 하나 주요 분야인 복식 복원은 전투시 착용하는 복식을 검증하는 작업이다.
갑주 형태에 따라 무기를 쓰는 가용 범위가 제한을 받기 때문에
복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구잡이로 동작 복원을 했다간 엉뚱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동작 복원 작업시 이런 오류들이 많았다.

(7) 무술 기능학

무술이 현대 체육학을 만나 드디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과거엔 몸 쓰는 원리를 모른 채 엉터리 수련법을 밤낮으로 행하다
큰 부상을 입고 심지어 폐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100명이 수련하여 1-2명이 대성하고 나머지는 낙오해 버리는 것을 당연시 했다고 들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수련법이 사라진 것은 현대 체육학의 주요 연구 성과인
운동기능학, 트레이닝 방법론... 등에서 혜택을 입은 바 크다고 본다.
반대로 기존 무술 기법들을 쳬계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기도 했을 것이다.

(8) 오컬트

개인적으론 그다지 탐착찮긴 한지만 신비주의 또한 무술의 한 분야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현실의 무술은 그다지 돈벌이가 되지 않지만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 속 무술 콘텐츠는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무협을 무협 자체로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자꾸 현실과 혼동하는 것이 문제다.
또 하나, 역사 무협 소설 장르는 팩트를 심각하게 왜곡한다.
예를 들어 김용 무협 소설인 '의천도룡기'에선 장삼봉이 구양진경을 온전히 익히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독자 연구 끝에 태극권을 창시했다고 나온다.
이걸 그대로 믿어 버리면 전진교 도사들이 모두 태극권을 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쌩구라다.
이것은 양로선이 만든 현대 무술이고,
문맹이었던 양로선을 대신해 '태극권'이란 명칭을 부여한 사람은
청나라 관료였던 무씨 형제 중 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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