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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감각 작성일 2018-05-14



혜화동에서 '운 + 동' 지도하는 연습실을 운영할 당시 자주 드나들던 단골 커피집이 두 군데 있었다.
한 곳은 여전히 장사중이고 다른 한 곳은 없어졌다.
지금도 영업 중인 커피집(이하 1번)은 흔하고 평범한 커피 파는 곳이고,
사라진 커피집(이하 2번)은 커피콩을 엄청 까다롭게 관리하였다.
1번집 사장은 커피맛보다 고객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고,
2번집 사장은 커피 콘텐츠 자체에 정성을 쏟았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질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1번집은 생존했고, 2번집은 사라졌다.

2번집 사장은 평소에도 다른 카페들을 질 낮은 콩을 쓴다며 습관처럼 비난하곤 했다.
몇 년 간 이 사람을 지켜봤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이 단순한 시기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자기 아집이 강한 캐릭터로 비춰질 뿐이었던 것 같다.
드립 커피도 자기처럼 내려야 하고,
에스프레스도 다른 웬만한 곳보다는 자기 게 콩의 품질이나 배합에 있어서
최고의 가성비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에스프레소가 정말 그렇게 맛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렇지 않았다.

2번집 사장이 이렇게 까다로운 태도를 갖게 된 이유는
결국 10여년 축적한 경험과 (본인 스스로 주장하길) 예민한 미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다른 카페에서 맛 본 커피맛을 설명할 때 찌푸려지는 표정을 볼 때마다
내가 듣기 싫은 거지같은 음악 들을 때 느끼는 감정이 연상되곤 했다.
미각이든 청각이든 감각이 예민하면 결국 자신에게 스트레스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감각이 민감하여 본인은 괴롭더라도 그 점을 이용하여
돈이라도 벌 수 있다면 참을만 할지 모르겠으나,
나 같은 민간인이 쓸데없이 호불호를 극단적으로 가르는 거... 참 병신같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물릴 수 없고 그냥 생겨난 대로 살 수밖에 없다.

2번집은 장사가 안 돼 폐업하는 거면서 입으로는 "홀가분하다"고 했다.
나는 이 말 속엔 진심과 거짓말이 반반 섞여 있다고 보았다.
자기 딴엔 정성을 들여 최고의 커피 콘텐츠를 세상에 내놨지만 외면받았다.
본심은 대학로에서 오래 장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회한을 다 쏟아내면 찌질해 보일까봐 잠시 감정을 속인 것 아니겠냐.
그렇게 생각하니 더 안쓰러웠고, 한편으론 그 사람에게서 고지식한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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