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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공명심 작성일 2018-03-12
내 나이를 기준으로 2-30년 앞 세대는 데-칸-쇼를 대충이라도 알지 못하면
무식하다 갈굼 당하는 시대였던 것 같다.
386세대는 거기에 더하여 헤겔, 막스를 주워 들어 아는 척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두 세대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는 바람에 무식한 티 내고 싶지 않아
20대 시절 독서를 엄청 재미 없고 읽다 짜증나는 것들 위주로 하느라 괴로웠다.
자연스럽게 철학 중에 미학이란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음악 미학에 호기심이 생겨 아도르노가 쓴 무슨 책을 읽다가
'씨발, 뭔 말이야!!'라며 혼자 열받아 (은유가 아니라 정말로 책을) 내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의 뇌가 참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여 유럽고전음악 뿐 아니라
재즈도 미학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고, 정말로 그런 시도를 하였다.
제목부터 대단히 시건방지게 '재즈 미학'이라고 정해 놓고
졸라 끙끙대며 PC통신 음악 동호회 게시판에 20여편을 연재하였다.
돌이켜보면 좆도 모르는 새끼가 존나 아는 척 한 쓰레기 글이었지만,
인간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동물이고
나 역시 터무니 없는 짓을 실제로 해봤기 때문에
이런 가식적인 글은 쓰면 안된다는 걸 납득하였다.

십 년 쯤 시간이 흘러 인터넷에서 '마일즈 데이비스'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내가 쓴 '재즈 미학' 글을 통째로 올려 놓고 원저자 행세를 하는 웹페이지를 발견했다.
열받아서 어떤 새끼인지 신상 조사를 해 보니 대구 근처 모 군부대에 근무하는 장교였다.
부대 안 사람과 직접 통화하기가 어려워 하는 수 없이 방명록에 항의글을 남겼고,
이로 인해 실상을 안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라"는 글을 연이어 올리자
어느 날 슬그머니 글이 사라졌다.
간혹 내가 쓴 글을 무단도용한 인간이 있긴 하지만 이 놈처럼 뻔뻔한 최악은 지금까지도 없다.
요새 말로 이런 부류 인간을 '관심종자', 줄여서 '관종'이라고 한다.
이 인간의 경우 재즈 오타쿠 행세를 하고 싶어 내 글을 도용하지 않았나 짐작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원저자인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습작 수준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이용해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니!
사람들은 어렵게 쓴 글을 보면 자신이 이해를 못할 뿐
그 안에 뭔가 심오한 것이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이 사례를 통해 뼈져리게 실감했다.

ppss.kr이란 웹페이지에 자기계발서류의 글을 올리는 곽숙x란 사람이 있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그 글들 상당수가 무단도용의 결과란 증거들이 올라오는 것들 보며
문득 그 옛날 재즈미학과 관련한 일화가 떠올랐다.
도대체 뇌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으면 뻔히 들킬 일을 자행하는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긴 하다.
곳곳에 허영심, 공명심 등의 욕망이 유난히 강한 종자가 실제한다면
이런 인간들과 사사로이 얽혀 고통받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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