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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께브라다 깎던 노인 작성일 2020-02-08
'방망이 깎던 노인'을 땅고 버전으로 패러디.
땅고 용어를 모르면 뭔 말인지 몰라 별 재미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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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바람 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홍대 왔다 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 두리번거리다 밀롱가를 들어가니 한 노인이 있었다.
쁘락띠까 시간이긴 했으나 사람이 없었다.
께브라다나 잠깐 배워 가려고 좀 알려달라고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피구라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알아보슈."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가르쳐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처음에는 빨리 가르쳐 줄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만도 한데 자꾸 메디오 히로 연습만 시킨다.

인제 됐으니 그냥 연결 동작이나 알려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이딴거 더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께브라다나 가르쳐나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첫 1보에서 체중이 제대로 실리고 골반, 척추가 부드러워야 디쏘가 되지,
발 놓는 위치만 재촉한다고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배우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말이오? 노인장, 웬 똥고집?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배우시우. 난 못 가르치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피구라란 처음 1보를 제대로 만들어야지, 발만 대충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사람을 쳐다도 안 보고 태연스럽게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한두 동작을 가르쳐주고는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한다.
또 얼마 후에 내 모습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한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것이었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밀롱가를 흐르는 음악을 듣는 듯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집에 와서 동작을 맞춰보니 아내는 어디서 이렇게 배웠냐고 야단이다.
야매로 배운 거랑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전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아브라쏘가 헐거우면 여성은 께브라다 신호를 알 수 없어
남자 홀로 주저앉는 뻘쭘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아브라쏘가 딱딱하면 통나무랑 추는 것 같아 불편할 뿐이라,
예전엔 온몸이 경직된 채 팔 힘으로 상대를 마구 휘두르곤 했는데,
지금은 체중을 제대로 실어 어깨 힘이 저절로 빠지면서 아브라쏘가 훨씬 편해지니
요렇게 꼭 알맞은 께브라다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브라쏘는 상체를 바로 세우고 몸을 상하좌우로 늘려
발목, 무릎, 고관절, 척추로 이어지는 전신 이완을 잘하게 된 뒤 등 근육을 써서 상대를 안았다.
요사이는 머리를 들이대거나 팔을 뒤로 빼거나 힘으로 상대를 휘두르는 등 걷잡을 수가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춤은 춤이지만,
피구라를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진실한 움직임을 만드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냈다.
께브라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말벡 와인에 떡볶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 일요일 홍대 가는 길에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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