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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무어의 볼룸 댄싱 작성일 2023-01-22


내가 커플 댄스를 하게 된 계기에 관해선 이미 책과 글을 통해 여러 번 썼듯,
자칭 무술가란 자의식이 있기는 하나 근본이 없다(=스승이 없다) 보니
나름 수련을 통해 알게 된 운동 원리가 맞는지 틀린지 확신이 서질 않아 고민하던 중
무술 강 건너에 춤이라는 게 있음을 인식하면서부터다.

2003~4년 경 고대 무술사(史)를 전공한 모 교수님이 주최한 무술 연구 모임에 참석,
그분의 제자 중 한 명이 하필이면 그날 놀러 왔는데
통성명하는 과정에서 춤 선생이라길래 앗싸~ 그럼 나도 좀 배울 있냐고 해서 영국식 볼룸 댄스를 시작했다.
2~3년 정도 꾸준히 수업에 참여하며 소기의 목적(=내 몸공부가 옳았다는 확신)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세 가지 면에서 무술보다 춤이 몸공부에 더 좋다는 걸 알았다.
첫째, 도장에서 냄새나는 남자끼리 티격태격하다 이쪽으로 오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놀다 보면 저절로 몸공부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깊이에 있어서도 결코 무술보다 얕지 않았다.
둘째, 도장에선 연습 상대가 열 명 내외로 풀(Pool)이 작아 다양한 경험을 쌓기 어려웠지만
춤은 내가 다닌 학원 규모만 해도 거의 열 배 가까이 됐다.
셋째, 춤은 실수로 얻어 맞을 일이 없다.

그땐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가 다녔던 학원의 춤 선생이 업계에선 약간 이단아로 통하는 분임을 알았다.
외려 이점이 나의 덕후 + 반골 기질과 잘 맞아서 학원을 오래 다녔던 것이기도 하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분은 "댄스스포츠가 아닌, 볼룸댄스를 지도했다."
다시 말해 경기용 춤(=댄스스포츠)가 아닌 파티용 춤(=볼룸댄스)를 알려 줬다.
사전에 짜 맞춘 안무가 아닌 파티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려 줬다.

오늘날 볼룸 댄스는 크게 모던 5종목(=왈츠, 비엔나왈츠, 탱고, 폭스트롯, 퀵스텝)과
라틴 5종목(=자이브, 룸바, 차차, 삼바, 파소도블레) 등 총 10종목이 있다.
20세기 초에는 모던 종목만 있었고, 라틴 종목은 20세기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정리가 된 거로 안다.
영국이 종주국임에도 이 중 영국에서 태동한 춤은 한 개도 없다.
전세계 오만가지 춤 중에서 요렇게만 춤을 선정해 스텝을 정리한 집단이
ISTD라는 영국 댄스 교사 그룹이었기 때문.
'ISTD = The Imperial Society of Teachers of Dancing'의 약자다.
속물 + 허영기가 있는 몇몇 한국인 중에는 ISTD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을 취득한 후
'Imperial'이란 말에 취해 "I am 영국 황실 춤 자격증 보유자" 운운 자랑질을 하던데
내가 보기엔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부끄러운 발언이다.
간략하게만 말하면 영국은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든 후 자원을 쪽쪽 빨아먹기 위해
지리, 자원, 인종 구성은 물론이거니와 음악, 미술, 춤과 같은 문화까지
체계적인 조사를 했고 그중 하나가 춤 분과인 ISTD였던 것으로
'Imperial'의 올바른 번역은 '황실'이 아닌 '제국주의'라고 해야 옳다.

1957년에 독일에서 iCAD(International Council of Amateur Dancers)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1960년 이 단체가 기존에 쓰던 '볼룸 댄스' 또는   '소셜 댄스' 대신
'댄스스포츠'란 말을 처음 제안해 TV 방송을 탔다.
'Sport'란 말은 '운동' 외에 '시합, 경기'란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즉, 'Dance + Sport = 춤 + 시합'이다.
물론 기존에 볼룸 댄스 경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볼룸 댄스는 본격적인 경기용 댄스로 변하기 시작한다.
최종 목표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
iCAD는 1990년에 단체명을 IDSF(International Dance Sport Federation)으로 바꾼 뒤
다시 2011년 WDSF(World Dance Sport Federation)으로 바꿨다.

나는 오래전 댄스 학원에서 라틴 + 모던 10종목을 다 익히긴 했지만
댄스스포츠를 배운 적이 없고, 영국식 볼룸 댄스를 배웠다.
전자와 후자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홀드하는 자세에 있다.
댄스스포츠 모던 종목 시합을 보면 남녀가 바디 컨택한 상태에서 여성이 상체를 뒤로 열어젖힌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바디 컨택을 통해서만 오가는 리드 - 팔로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객과 심사 위원 눈에 잘 띄려는 게 훨씬 더 크리라고 본다.
반면 내가 볼룸 댄스를 출 당시엔 땅고의 오픈 아브라소(Abrazo Abierto)를 유지한 채로 췄다.
2000년 초중반 때에도 댄스스포츠 선수는 저런 식으로 추긴 했다.
십 년 넘게 관심을 끄고 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관련 링크로 시합 영상이 뜨길래 보다 깜짝 놀랐다.
과거보다 훨씬 더 상체를 격렬하게(!) 뒤로 꺾은 채로 춰서.
저 정도면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겠냐 싶을 정도로 엄청 심했다.
인간의 취향이라는 게 워낙 제각각이라 댄스스포츠 동작을 보며
"아름답다"고 할 사람이 많으니까 저러고들 추겠지만,
나는 미추(美醜)를 말하기에 앞서 저 위태로와 보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맘이 불편하다.
어차피 댄스스포츠는 땅고와 다르게 주 7일 내내 상시로 열리는 밀롱가(=춤 추는 공간)가 없기 때문에
내가 다시 거기로 갈 일은 없다만, 기본자세마저 저런 식이면 더더욱 볼 일은 없다.
나는 뒤로 꺾은 모습을 보며 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알렉스 무어(Alex Moore)는 1901년에 태어난 영국 댄스 교사다.
이분이 쓴 'Ballroom Dancing'이란 책은 모던 댄스의 고전이자 교과서로, 한국말로도 번역돼 나왔다.
이 책 표지 사진도 남녀가 상체를 젖히고 있길래 볼룸 댄스는 원래가 저런 줄 알았지!
유튜브 덕분에 백여 년 전 알렉스 무어 씨가 춤추는 영상이 남아 있음을 처음 알았다.
함 봐라, 어떻게 추시는지... 남녀 모두 무척 편안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은가?
이것이 볼룸 댄스 원래 모습이 아닐까?
물론 비엔나왈츠처럼 원심력이 작용하는 경우 남녀의 상체는 저절로 멀어지긴 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과 일부러 Crazy한 포즈를 만드는 행위는 전혀 다른 것.
내 눈에 비친 현대 댄스스포츠는 너무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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