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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하고 있는 '운 + 동'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
    2016년에 '그래비톨로지'란 책을 쓴 뒤엔 구구절절 말 할 필요없이
    "그래비톨로지라고 스스로 명명한 몸공부 체계다"라고 답변하면 돼 조금 편해졌다.
    이것은 중력(=Gravity)와 본체론(=Ontology)를 합한 합성어다.
    처음엔 미국 사이비 종교인 '싸이언톨로지'를 패러디해 장난삼아 지은 명칭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하는 '운 + 동'을 가리키기에 꽤 적절한 용어임을 깨달은 뒤부터
    장난기를 걷어내고 진지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넌 누구냐?"는 질문에도 적절한 답변을 못하고 그저 '길 가는 사람 = 도사'라고만 했었는데,
    그래비톨로지가 추구하는 길 가는 사람을 가리켜 '그래비스트'라 부르겠다고 책에 명시한 뒤엔
    단지 "나는 그래비스트입니다"라고 말하면 돼 간결해졌다.
    뭔지 모를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였던 것에 사소한 이름을 부여한 것만으로 상황이 많이 변했다.

    그래비톨로지가 바라는 궁극의 목표는 내가 서 있는 이곳, '지구의 중력'을 아는 것이다.
    '뇌'를 통한 논리와는 다른 '몸'을 통한 직관적 깨달음, 즉 '각성'을 추구한다.

    옛 말에 체(體)와 용(用)이란 개념이 있다.
    체(體)는 본체, 즉 몸을 가리키고, 용(用)은 몸 쓰임을 가리킨다.
    체(體)는 한마디로 몸 만들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몸 만들기와는 개념이 다르다.

    겉에 드러나는 근육을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을 몸만들기라 하지 않는다.
    몸 속에 감추어진 한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한 몸 단련하기다.

    동양에서는 그것을 단전(丹田)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그것을 파워하우스(Powerhouse)라고 했다.
    물론 각각의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100% 일치한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식이 성립한다.

    단(丹) + 전(田) = Power + House

    파워하우스의 실체는 속근육(=inner muscle)이다.
    속근육의 범위를 좁혀들어가면 몸 안 어느 부분에서 한 점으로 모아진다.
    이를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라 한다.

    속근육 기르는 수련을 체(體)라 하고,
    무게중심을 써서 바르게 움직이는 법 익히는 수련을 용(用)이라 한다면

    속근육과 무게중심을 동시에 아우르는 '핵심(核心)' = 속알

    이라 말할 수 있다.
    '속알'은 단전, 코어(Core), 파워하우스 등의 용어와 유사한 의미의 그래비톨로지 고유 개념이다.
    이 속알을 알고 깨달아 뇌는 '그것'만을 제어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것'에 맡기는 것,
    이로써 몸 전체가 저절로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르고 참된 움직임임을 오랜 세월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속알을 아는 앎이 깊어질수록 몸은 무위(無爲)에 가까워진다.
    속알을 더 깊게 알기 위하여 주변 근육들(=파워하우스)을 단련시켜야 하고,
    유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모든 운동은 속알을 더 깊이 각성하기 위함으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아가 이것을 아는 앎은 단순한 지식에 머물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달라진다.
    옛 글들이 단순히 좋은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공감하는 말씀(=logos)으로 화(化)하고
    그 말씀으로 인해 자율적인 도덕적 압박을 받는다.
    단순한 몸 움직임에서 출발하였으나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바르고 선한 사람이 되는 길(道)을 제시할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한다

소통

  • 그래비톨로지 수련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몸만들기 = 속알을 매개로 마음과 몸 사이의 소통.

    '나'가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에 팔 또는 다리를 직접 제어하는 게 아니고
    '몸 나'와 먼저 통신을 주고받은 후 '몸 나'를 통해 팔 또는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나'가 직접 팔, 다리를 움직이면 팔 힘 또는 다리 힘이 나올 뿐이지만
    '나'가 '몸 나'를 통해 팔, 다리를 움직일 줄 알게 되면 비로소 '몸 힘'이 나온다.
    몸 힘은 '나'와 '몸 나'의 소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보물, 바른 움직임의 비결이다.

    이때의 '몸 나'는 특별한 무게중심으로 옛날엔 단전(丹田)이란 말로 불리웠다.
    또한 지구의 중심에 코어(the core, 核)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몸 나'를
    코어, 즉 속알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2) 명상적 걷기 = 중력(Gravity)을 매개로 몸과 지구 사이의 소통.

    '나'와 '몸 나'의 소통이 잘 되면 '나'는 '몸 나'를 매개로 지구와의 소통을 체험한다.
    지구와 '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인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무위자연하게 움직이는 법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된다.

    (3) 더불어춤 = 몸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 (언어를 초월한) 소통(=몸 대화).

    더불어춤은 커플 댄스다.
    두 남녀가 더불어 함께 추는 춤이다.
    그러나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더불어춤은 커플 댄스가 아니기도 하다.

    더불어춤 수업을 통해 단지 '춤'만 잘 추게 됐다면 껍데기만을 얻은 것이다.
    바른 몸 움직임을 깨닫기 위한 방편으로 춤을 선택했을 뿐이다.
    중력과 몸 사이 상관관계, 속알(=무게중심 + 속근육), 척추펴기,
    등펴기, 중심 이동, 회전축 등 몇 가지 핵심 원리를 깨달아 몸 안에서
    모순 없이 저절로 구현되는 길을 스스로 발견하였을 때 비로소 참 된 '걷기'를 각성한다.
    결국 '걷기'를 잘 하면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된다…는
    이 지극하고 평범한 메시지를 마음 깊이 납득하였다면 비로소 속알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몸치

  • 넓은 의미에서 몸치란 중력(Gravity)에 쓸데없이 저항하는 모든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중력에 저항한다는 건 기계로 치면 연료를 많이 소모하는데 효율이 안 좋은 것이다.
    몸치의 몸은 고비용 저효율로 작동하는 기계와 같다.
    중력에 저항하는 짓을 안 할수록 힘이 적게 듦으로 그만큼 효율이 높아진다.
    그럼 저항을 안 하면 되지 않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없다.
    일부러 저항하는 게 아니고 저항하고 있음 자체를 자각 못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진 몰랐는데 오늘 그것을 알았다면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에 대하여 상대적 몸치다.

    좁은 의미에서 몸치란 운동능력이 평균에 비해 절망적으로 떨어지는 사람, 즉 극단적 몸치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우선 심각한 수준으로 기초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또한 각종 스포츠, 춤 등을 배울 때 대부분 금방 따라하는 간단한 동작조차 쉽게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전에 나는 극단적 몸치의 문제가 오로지 운동 능력을 박복하게 타고난 탓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최근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에게 관찰을 허락(?)해 준 몇몇 몸치들은 몸 자체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마음에 어떤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란 심증이 강하게 들었다.
    무경험자로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특별한 문제를 속에 품고 있다든지,
    심지어 그것을 남이 알까 두려워 꽁꽁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란 가설을 세운
    뒤 대하는 태도를 바꾸니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진전을 보았다.

    몸치일수록 운동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한데 오히려 그게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실상은 간단한 것을 '욕망'이 매우 복잡한 것으로 둔갑시킨다.
    따라서 잘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포기만 하면 몸치가 갖고 있는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이 일거에 해소된다.
    몸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뿐인데 예상치 않게 마음의 병이 일부이긴 하지만 치유되었던 것이다.